비디오 게임은 어떻게 극우의 부상을 추동하는가

폭력적이거나, 고립주의적이거나, 여성혐오적인 욕망들이 게임 속에 흐르고, 플레이어들에게 우익 이데올로기를 주입한다

오큘러스 공동 설립자 팔머 럭키
‘오큘러스 VR의 크리에이터 팔머 럭키같은 게임 제작자들은 우익과 우파적 자유지상주의 조직을 지지한다. 하지만 이것이 게이머들의 우경화라는 새로운 트렌드는 아니다.’ 사진: 블룸버그, 게티 이미지

플로리다의 한 학교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 이후, 도널드 트럼프는 이러한 사건이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의 결과라며 젊은이들이 자신들이 즐기는 게임을 모방할 수도 있다는 철 지난 주장을 부활시켰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최근 결정에서 비디오 게임 중독을 공식적인 질병으로 간주하는 데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드러난다. 그러나, 이러한 반응들은 잘못된 이유로 올바른 일을 한다는 불안을 보여준다.

게이밍 문화가 폭력과 관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극우 담론의 부상과 “알트라이트“적인 여성혐오와 인종차별주의의 확산이라는 맥락이 고려되어야 한다. 트럼프는 확실히 오른쪽이고, WHO가 규범적 중도주의를 상징한다면, 게이밍을 걱정하는 쪽은 진보 좌파 진영이다.

게이밍에서의 백인 남성 특권은 게이머게이트의 집단 괴롭힘 맥락에서 그리고 트럼프와 4chan 웹사이트에 있는 게이머 메시지 보드 스레드에서 논의되어 왔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히 많은 게이머들이 우익이라거나, 우익이 게이머들을 포섭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논리와 게이밍의 즐거움 자체가 우익 정치를 통해서 공급되고 지속된다는 것이다.

게임은 사용자에게 일련의 가치를 주입하는 이데올로기적인 구조물이다. TV 프로그램이나 영화와 마찬가지로, 게임 역시 그 맥락 속에서 어떤 이데올로기를 지지한다. 부시 정권 하에서, 미국의 게임들은 공격적인 외교 정책을 뒷받침해 주었고,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게임들은 고립주의나 제국에 대한 향수를 옹호하였으며, 이러한 경향은 2000년대 반(反) 이슬람 게임의 증가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비디오 게임에는 다른 매체와 비교할 때 적어도 두 가지 독특한 특징이 있다.

첫째로, 우익 이데올로기는 비디오 게임 역사 전반에 걸쳐 과대대표되고 지배적인 것이었다는 점이다. 맥락의 영향이 있기는 하지만, 비디오 게임은 오랫동안 “외계인”을 물리치는 데에(스페이스 인베이더에서 엑스컴까지), 불순한 감염에 대한 공포에(하프 라이프에서 더 라스트 오브 어스까지), 경계를 통제하는 데에(미사일 커맨더에서 식물 vs 좀비까지), 영토 획득에(커맨드 앤 컨커에서 스플래툰까지), 제국 건설에(문명에서 트로피코까지), 공주 구하기에(마리오에서 젤다까지), 자연 친화를 복원하는 데에(소닉에서 팜빌까지) 초점을 맞춰 왔다.

둘째로, 비디오 게임은 사용자를 본능적인 차원에서 행동하게 하며, 게이머들이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즉각적으로 동의하게끔 한다는 점이다. 레지던트 이블을 플레이하는 것은 영화판을 보는 것과는 다르다. 컨트롤러를 휘두르는 게이머는 게임의 욕망을 ― 다른 누구의 것이 아닌 ― 자신의 것으로 경험하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충동(drive)”과 “본능(instinct)”을 구분했다. 본능은 우리 안에서 나오는 반면, 충동은 정치적인 힘이 우리를 특정한 방향으로 끌고 갈 때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비디오 게임은 본능으로 가장한 충동이며, 개인적 차원에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라는 다른 매체가 제공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익 이데올로기를 자연화한다.

이와 같이, 게이밍의 논거란 쾌락적 충동(impulse)을 정치 이데올로기와 결합시키는 것으로, 게이머들이 사람은 본능에 따라야 한다는 촉구에 민감해지는 과정인 것이다. 트럼프가 공약한 미국-멕시코 장벽에 대한 담화나 종족민족주의에의 호소가 적절한 사례이다. 지지자들이 논리에 따라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욕망을 충동적으로 느끼는 것 ― 게이밍의 논리가 이것이다.

안젤라 나글은 책 『선비들을 죽여라(Kill All Normies)』에서 어떻게 이질적인 우익과 비정치적인 트롤 커뮤니티들이 알트라이트로 합종연횡하는지 보여주었는데, 게이밍과 우익의 연결은 더 깊이 더 멀리 나아간다. 게임은 우익 메시지를 전달하고, 우익적 쾌락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우익 플레이어들을 끌어들이고, 더욱 우려스럽게도, 훗날 우익적 가치를 받아들일 비정치적인 게이머들을 배태시킨다. 오큘러스 VR의 제작자 팔머 럭키와 같은 게임 제작자들이 우익과 우파적 자유지상주의 조직을 지지할 때, 우리는 게이머의 우경화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보는 것은 아니겠지만, 게이밍의 구조에 대한 단서와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배양하는 데에 있어서 그 역사적 역할은 보게 될 것이다.

1990년대에 게이밍에 대한 또다른 이론적 반응이 나타났고, 최근 다시금 주장되고 있다. 새로운 논자들은 게임이 사회에서 촉발될 수 있는 좌절감의 해소 창구를 제공하므로, 게임을 만드는 것이 폭력의 원인이 아니라 예방이라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입장은 두가지이다.

트럼프는 게이밍에 대한 고루한 주장에 의지하여 게임의 역할을 과장하고 문화보다도 법률적·경제적 조건을 우선시한다. 그는 총기 난사의 근본 문제인 총기법에서 게이머들로 주의를 돌린다. 반면에 게임이 폭력을 예방한다는 생각은 게임의 역할을 경시하는 것으로, 폭력적이고 여성혐오적인 욕망이 우리 모두에게 존재하며 게임이 그러한 충동의 배출구를 제공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러한 입장은 게임이 우리에게 구체적인 이데올로기적 영향을 끼치며 우리로 하여금 개인적 차원에서 정치적인 것들을 욕망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1960년대·70년대·80년대에 할리우드 영화는 세계인(심지어 영화를 보지도 않은 사람들마저도)의 욕망, 이해심, 감정을 뒤바꿔놓았지만, 개인적 맥락에서 그 패턴을 인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비디오 게임으로 그에 비견될 만한 혁명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현재 게임에 의해 배양된 새로운 욕망은 극히 오른쪽으로 치우쳐져 있으며, 시장에 진보적인 게임이 (일부 나오고는 있지만) 더 많이 나오지 않는다면, 미래는 정치적인 현재보다 어두울 것이다.

알피 바운은 게임과 정치에 대한 철학서 The Playstation Dreamworld의 저자이다.


원문: Alfie Bown(2018). How video games are fuelling the rise of the far right. The Guardian.

얼마 전에 올린 다른 글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많은데다, 전(前) 네오나치 활동가가 레딧의 AMA을 통해 멀티플레이어 게임에서 힌트를 흘리는 방식으로 우익 씬이 새로운 인물을 포섭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