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산보객의 죽음

구스타브 칼리보트의 〈파리의 거리, 비오는 날〉, 1877년. Erich Lessing/Art Resource
구스타브 칼리보트의 〈파리의 거리, 비오는 날〉, 1877년. Erich Lessing/Art Resource

예전에 인터넷의 미래에 대한 오래된 글들을 찾아보고 있을 때, 1998년에 올라온 ― 하필이면, 웹사이트도 세라믹스 투데이라는 이름이었다 ―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에세이 하나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사이버 산보객(cyberflâneur)”의 부상을 기리는 글에는 이러한 신비로운 유형을 고대하며 디지털 세계에 대한 밝은 전망과, 명랑함, 강한 호기심, 뜻밖의 재미가 가득 차 있었다. “도시와 거리가 산보의 대상이 되었듯이, 인터넷과 초고속 통신망은 사이버 산보의 대상이 되었다”라는 문장이 쓰여졌을 때 이러한 미래상은 거의 필연적인 것처럼 보였다.

흥미로움 속에서 나는 사이버 산보객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찾아보기 시작하였다. 산보가 온라인에서 번성할 것이라고 믿는 다른 비슷한 시기의 논자를 찾긴 했지만, 오늘날 인터넷의 슬픈 상황은 그들이 완전히 틀렸음을 보여줄 뿐이다. 사이버 산보의 본질적인 실천은 소셜 미디어의 세계와는 확연히 다르지만, 사이버 산보객은 매우 드물게 존재한다. 뭐가 잘못됐을까? 또 이게 우려해야 할 일일까?

산보(flânerie)의 역사를 참고하는 것이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와 독일 비평가 발터 벤야민이라는 산보를 근대성의 징표로 본 두 사람 덕에, 오늘날 산보객(주로 남성이었다)의 모습은 19세기 파리와 강하게 연관되어 있다. 산보객은 여유롭게 거리를 특히 아케이드를 ― 그 스타일리시하고, 생기 넘치고 북적거리는 유리 지붕 아래 줄지어 있는 상점들을 ― 오노레 드 발자크가 “눈의 미식”이라고 불렀던 것을 채우기 위해 돌아다녔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는 의도는 아니었지만, 산보객은 익명으로서 움직이는 것을 선호했다. 폴란드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산보객이 통달한 기술은 이목을 끌지 않으면서 보는 것이다”라고 논평했다. 산보객은 비사교적인 인물이 아니었지만 ― 그에게는 왕성한 군중이 필요했다 ― 거기에 휩쓸리지도 않았다. 그는 고독을 음미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리고 시간도 많았다. 산보객이 걸을 때 거북이를 데리고 다녔다는 기록도 있다.

산보객은 상점가를 떠돌아 다녔지만, 그는 소비주의의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 아케이드는 주로 풍부한 감각적 경험을 이루는 통로였고 ― 소비의 신전이었다. 그의 목표는 관찰하고, 군중 속에 잠기고, 웅성거림, 혼돈, 혼종성, 세계성(cosmopolitanism)을 포착하는 것이었다. 때로 그는 자신이 본 것들을 ― 그의 사적 자아와 세상에 대해서 ― 짧은 에세이나 신문 기사로 남기기도 했다.

이제 왜 사이버 산보객이 웹 초기에 왜 그렇게 매력적인 개념으로 보였는 지 알 수 있다. 어떤 정부나 기업에 의해 식민화되지 않은 미개척지로서 사이버 스페이스를 탐험한다는 발상은 낭만적이다. 이러한 낭만주의는 초기 웹 브라우저의 이름(“인터넷 익스플로러”,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에서도 드러난다.

지오시티나 트라이포드와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는 그 시기의 디지털 아케이드였다. 가장 모호하고 가장 독특한 것들을 다루었으며, 인기나 상품 가치에 의해 위계가 정해지지도 않았다. 당시의 이베이는 대부분의 벼룩시장보다도 이상했다. 가상의 매대를 돌아다니는 것은 물건을 사는 것보다 즐거운 일이었다. 1990년대 중반의 짧은 기간 동안, 인터넷은 뜻하지 않게 산보의 르네상스를 이끈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보헤미안, 쾌락주의자, 특이한 사람들의 피난처로서의 인터넷이라는 달콤한 꿈에 잠겨 있던 사람들은 원래의 산보객이 사라진 이유를 알지 못했다.

19세기 후반, 파리는 빠르고 거대한 변화를 맞았다. 나폴레옹 3세 재위 중 오스만 남작에 의해 진행된 건축 및 도시 계획에 의해 중세적인 작은 길이 철거되고, 행정적 용이를 위해 건물에 번호가 매겨지고, 넓고 개방적이며 알기 쉬운 대로들(boulevards)이 건설되었다(부분적으로는 위생 개선 목적이 있었지만, 혁명 중의 봉쇄전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가스등의 확산과 야외에서 보내는 시간의 매력은 도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기술과 사회의 변화 또한 영향을 주었다. 거리 교통의 출현은 명상적인 산보에 위협이 되었다. 아케이드는 더 크고 실용적인 백화점으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도시 생활의 합리화는 산보객들을 지하로 몰았고, 몇몇 이들은 “내적 산보”를 하기에 이르렀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코르크 골방(아이러니하게도, 오스만 대로에 위치해 있었다)에서의 자진 유배는 그 정점이었다.

비슷한 것이 인터넷에서 벌어졌다. 원래의 명랑한 정체성을 뛰어 넘어, 이제 인터넷에는 천천히 돌아볼 곳이 더는 남아있지 않다. 볼일을 보기 위한 곳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제 누구도 인터넷을 “서핑”하지 않는다. 모바일이나 태블릿의 전용 애플리케이션으로 웹 브라우저를 열거나 인터넷의 다른 부분을 방문하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해낼 수 있는 “앱 패러다임”의 인기는 사이버 산보의 가능성을 낮추고 있다. 오늘날 온라인 활동의 상당 부분이 어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쇼핑 ― 가상 선물, 가상 애완동물, 가상 애완동물을 위한 가상 선물 ― 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루폰을 돌아다니는 것은 아케이드, 온라인, 오프라인을 돌아다니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은 아니다.

오늘날 웹의 템포 또한 다르다. 십년 전, 모든 트윗과 상태 업데이트가 즉각적으로 색인되고 갱신되고 응답을 얻는 “리얼타임 웹”과 같은 개념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는 오늘날 실리콘 밸리가 좋아하는 유행어이다.

놀랄 일은 아니다. 사람들은 속도와 효율을 좋아한다. 하지만 과거 특유의 모뎀 소리와 함께 느리게 불러져 오는 페이지에는 놀이와 해석의 새로운 공간을 여는 그 나름의 특이한 시학이 있었다. 때때로, 이런 느림은 우리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의 거북이는 이제 없다.

오늘날에는, 세계의 모든 정보를 정리하려는 구글은 시어스 카탈로그가 이전 세대처럼 직접 매장에 방문할 필요가 없도록 만들었듯이 개개의 웹사이트를 방문할 필요가 없도록 만들었다. 요즘 구글이 갖는 거대한 야망은 우리의 질문에 ― 날씨, 환율 변동, 어제의 경기 결과 ― 다른 사이트를 전혀 방문하지 않고도 모두 대답하는 것이다. 구글의 홈페이지에서 질문을 입력하면, 대답이 검색 결과 상단에 표시된다.

이러한 간단함이 검색 산업에서 (구글의 경쟁사들이 주장하듯이) 해가 되는 지는 요점이 아니다. 단순히 도구적인 방식으로 정보를 찾고, 인터넷을 거대한 Q&A 기계로만 보는 사람들이 사이버 산보에 호의적인 디지털 공간을 구축할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인터넷의 오스만 남작이 있다면, 그것은 페이스북이다. 사이버 산보를 가능케 하는 모든 것이 ― 고독과 개인성, 익명성과 투명성, 신비함과 모호함, 호기심과 위험 감수 ― 이 회사로부터 공격받고 있다. 페이스북은 보통 회사가 아니다. 전 세계에 8억 4천 5백만명의 사용자가 있다. 주장하건대, 페이스북이 가고자 하는 길은 인터넷이다.

페이스북의 사업 모델(예를 들어, 온라인 상의 익명성 상실로 인해 더 많은 광고 수익을 올리는 것)을 비난하는 것은 쉽지만, 문제는 훨씬 깊은 곳에 있다. 페이스북은 산보를 가능케 하는 기발한 방법이 필요하다고 믿는 듯 하다. 페이스북의 최고 운영 책임자 셰릴 샌드버그는 몇달 전 《찰리 로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이 소셜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그 상사인 마크 주커버그가 같은 쇼에서 설명한 바 있다. “영화를 혼자 보러 가길 원하시나요, 아니면 친구들과 같이 가길 원하시나요?” 그는 질문이 끝나자 마자 스스로 답했다. “친구와 함께 가고 싶을 겁니다.”

그 의미는 분명하다. 페이스북은 인터넷을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심지어는 공개적이지는 않지만 소셜하고 협동적인 브라우징을 하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스포티파이나 넷플릭스같은 회사와의 영리한 제휴를 통해서, 페이스북은 사용자들이 그 자신의 활동을 추구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지점까지 “소셜”의 폭압을 열렬히 받아들일 강력한(하지만 잠재적인) 유인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제, 마크 주커버그가 영화에 대해 말한 것을 정말로 믿는다면, 그의 친구들이 뽑아낸 긴 영화 목록이 있다. 헝가리 감독 벨라 타르가 만든 7시간짜리 흑백 아트하우스 영화 《사탄 탱고》는 왜 그 목록에 없는가? 뭐, 만약 여러분이 친구들이나, 충분히 큰 그룹 사람들에게 조사해 본다면, 《사탄 탱고》는 거의 항상 《워 호스》같은 주류에는 들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최고의 선택은 아니겠지만, 기분 상할 일은 아닐 것이다. 소셜의 폭압이란 이런 것이다.

게다가, 훌륭한 작품을 혼자 소비하는 것과 함께 소비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르지 않은가? 또 먼저 왜 고독은 공포의 대상이 되는가? 마치 《행오버》의 속편 출연진인 양 파리 거리를 배회하는 산보객 무리들을 떠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주커버그에게는 그가 《찰리 로즈》에서 인정했듯이 이런 것이다.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좋아요.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지요.”

이는 페이스북이 최근 포용하고 있는 “마찰 없는 공유”가 뒷받침하는 집단적인 경험보다 개인적 경험이 다소 열등하다는 것으로, 지금부터 우리는 우리가 공유하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해서만 걱정하면 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자동으로 공유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페이스북은 파트너들에게 우리가 읽는 글, 우리가 듣는 음악, 우리가 보는 비디오와 같이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자동으로 공유하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도록 장려한다. 어떠한 언질도 해 주지 않는 마찰 없는 공유는 페이스북이 우리를 광고주에게 팔기 쉽게 해 주고, 광고주는 자기 제품을 우리에게 팔기 쉽게 해 준다.

마찰 없는 공유가 우리의 온라인 경험을 향상시켜 주는 것이라면 그만한 가치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요컨대 19세기의 산보객은 마을로 나서자 마자 광고 포스터와 벽화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슬프게도, 마찰 없는 공유는 “쉽게 쓰여진 시”와 같은 문제점을 갖게 된다. 최종 결과라는 것이 종종 봐줄 수 없는 지경이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글을 찾고 친구에게 공유하기를 선택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단 한가지 일이다. 이는 여러분의 웹 브라우저나 앱에 지나가는 모든 것들을 친구에게 전달하여, 친구가 그 중에서 흥미로운 것을 선택하기를 바라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마찰 없는 공유가 제대로 작동하면 우리는 모든 뉴스를 페이스북 안에서, 경계를 떠나 웹의 다른 부분을 방문할 일 없이 볼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가디언이나 워싱턴 포스트와 같은 몇몇 뉴스 제공자들은 이미 사용자들이 자기 웹사이트를 방문하지 않아도 기사를 읽을 수 있게 해 주는 페이스북 애플리케이션을 가지고 있다.

인기 테크 블로거인 로버트 스코블이 마찰 없는 공유를 옹호하는 최근 포스트에서 설명했듯이, “새로운 세상에선 여러분이 페이스북을 열면 여러분이 관심을 갖는 모든 것이 화면 아래로 스트리밍될 것이다.”

이것이 사이버 산보의 숨통을 끊는 바로 그 입장이다. 산보객이 배회하는 요점은 그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때때로 발터 벤야민과 같이 작업하기도 했던 독일 작가 프란츠 헤셀에 따르면, “산보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마음에 정해둔 것이 없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페이스북의 강하게 결정론적인 세계와 비교해 볼 때, 마이크로소프트의 상상력 떨어지는 1990년대 슬로건은 ― “오늘 어디로 가고 싶나요?” ― 심히 불온해 보인다. 페이스북 시대에 누가 그렇게 한심한 질문을 하는가?

벤야민에 따르면, 샌드위치맨의 슬픈 초상은 산보객의 마지막 현현이었다. 어떤 면에서, 우리 역시 보이지 않는 광고를 우리의 온라인 자아에 매달고 페이스북의 사이버 거리를 걷는 샌드위치맨이 되고 말았다. 딱 하나 차이점이 있다면 정보의 디지털적 특성 덕택에 우리는 노래, 영화, 책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들을 알게 모르게 광고하고 다니면서도 말이다.


원문: Evgeny Morozov(2012). The Death of the Cyberflâneur. New York Times.

글의 서두에서 예브게니 모로조프가 찾았다고 한 세라믹스 투데이의 글이다. 두 편으로 나뉘어 게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