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과학 보급자들은 종교의 도구인 두려움과 경이로움을 사용하여 신앙을 버린 젊은 세대들을 설득하는 데 이용하는가

리자이나에서 발표된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칼 세이건과 닐 디그래스 타이슨의 프로그램은 과학이 얼마나 종교적 방식으로 ‘매혹시키는’ 지를 보여준다

닐 디그래스 타이슨
칼 세이건이 그랬듯이, 닐 디그래스 타이슨 또한 과학을 홍보하기 위해 종교적 수사를 빌려 온다고 안소니 네언은 주장한다.

1980년 미국의 유명 천문학자이자 과학 보급자인 칼 세이건이 다큐멘터리 《코스모스》를 만들었을 때, 그의 대본은 그의 아내이자 공동 작가인 앤 드루얀이 의도된 “성서적 어조”라고 묘사한 것을 연상시켰다.

“코스모스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다”라고 세이건은 말했다. “코스모스를 정관(靜觀)하노라면 깊은 울림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지고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며 아득히 높은 데서 어렴풋한 기억의 심연으로 떨어지는 듯한, 아주 묘한 느낌에 사로잡히고는 한다.”1

새로운 연구 논문에 따르면, 그 첫머리가 『창세기』의 첫 구절처럼 원시적인 경이와 같은 감각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종교적 수사라는 옷을 입혀서 과학을 선보이는 것은 효과적인 트릭이며, 이는 미국의 천체물리학자 닐 이드래스 타이슨이 진행하는 《코스모스》의 리메이크판 《코스모스: 스페이스타임 오디세이》에서도 되풀이되었다.

최근 리자이나에서 열린 인문사회과학회(Congress of the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회의에서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두 프로그램은 현대 과학이 얼마나 종교적 방식으로 “매혹시키는” 지를 보여준다. 과학 보급자들은 두려움, 숭배, 경이로움이라는 종교의 고대 도구를 빌려와 조직화된 종교를 대체로 포기했지만 여전히 더 깊은 의미를 원하는 젊은 세대들을 설득하는 데에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현대 우주과학에 입문하는 가장 인기있는 다큐멘터리 시리즈는 고전 종교의 “예언”, “계시”, “세계관”과도 같다고 토론토 대학교에서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앤소니 네언은 주장했다.

칼 세이건
칼 세이건은 이전에 없던 방식으로 과학을 대중화시켰다.

“《코스모스》는 과학의 내러티브를 사건과 인물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야기를 우주의 깊은 구성요소로 배치시키는 방식으로 만들어냈다”라고 네언은 말했다.

“종교와도 같은 이야기를 구현해 냄으로써, 《코스모스》에서 과학은 매혹적인 것이 되었다. 이는 서구 북미 전역에 걸쳐 구체화되는 더 커다란 움직임을 반영하는데, 종교에 몸담지는 않지만 의미와 목적을 갈망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과학과 그 교육에 매료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연구 주제가 주는 천상의 아름다움의 포로가 된 과학자들부터 과학적 증거를 믿음으로 화해시키려 애쓰는 신앙인에 이르기까지, 종교와 과학이 만날 때 지성의 기나긴 역사는 흐릿해진다.

종교와도 같은 이야기를 구현해 냄으로써, 《코스모스》에서 과학은 매혹적인 것이 되었다

“과학과 종교의 역사를 신화화하는 것은 둘의 경쟁으로 이어진다”라고 네언은 밝힌다. 그는 갈릴레오에 대한 박해에서부터 젊은 지구 창조론자이자 기독교 근본주의자인 켄 햄과 《사이언스 가이》의 진행자인 빌 나이와의 논쟁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례를 제시했다.

이 논쟁은 종교를 숭배의 관례가 아니라 우주에 관한 사실적 주장의 모음으로 받아들일 때 일으킬 수 있는 어리석음을 보여주었다. 종교와 과학이 서로의 우주론을 다툴 때, 과학적 법칙을 따르는 싸움에서 종교가 패배할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앤 드루얀
앤 드루얀이 트라이베카 영화제 기간 중 2008년 4월 27일 페이스 대학교에서 열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대한 대화"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Amy Sussman/Getty Images for Tribeca Film Festival

하지만 이런 결과는 다소 불충분한 것이다. 이는 판토마임 싸움과도 같다. 이는 과학의 설명력을 과장하는 것인데, 우주의 기원, 생명의 시작, 물질과 의식의 구분과 같은 심도 있는 질문은 여전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사람들이 종교에 이끌려 머무는 이유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로브를 입은 남자가 마치 교수인 양 세계의 근원에 관한 유사사실을 말하는 것을 듣기나 할 뿐이라고 추측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과 꾸란, 토라는 교과서가 아니며, 그렇게 취급하는 것은 두가지 명백한 넌센스를 불러일으킨다. 하나는 성서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유사과학적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글쎄요, 사실은”이라는 과학 보급자들의 늘 그렇듯이 두번째 단어에 방점이 찍힌 반응이다.

그것은 과학이 무엇이고 종교는 무엇을 하는가 사이에 존재하는 단단한 선을 흐리게 만든다

과학적 배경에서 종교를 논하는 이면은 바로 종교적 배경에서 과학을 논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언이 현대의 지적 트렌드로서 밝혀낸 것이며, 《코스모스》와 그 리메이크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코스모스》는 과학 교육 쇼 그 이상이며, 역사적인 인공물 그 이상이며, 인간의 유산 그 이상이다. 그것은 예언이며, 계시이고, 세계관이다. 과학적 관점이고, 인간의 이야기이며, 삶이다”라고 네언은 쓴다. “그것은 과학이 무엇이고 종교는 무엇을 하는가 사이에 존재하는 단단한 선을 흐리게 만든다.”


원문: Joseph Brean(2018). How science popularizers use religion’s tools of awe and wonder to pitch to younger generations that have abandoned faith. National Post.

  1. 칼 세이건, 『코스모스』, 홍승수 역, 사이언스북스, 2004, 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