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나는 일기도 썼다. 일기를 보관하지는 않았다. 이 모든 것 위로 무지막지한 난폭함과 어리석음이 휩쓸고 지나갔으며, 배설 작용을 하던 이 페이지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1

어렸을 때는 남들처럼 일기를 쓴다는 게 고역이었는데 지금 와서는 그렇지 않다. 더이상 ‘검사맡기’ 위해 글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일기장을 검사맡을 때에는 여러가지를 고려해야 했다. 어느 정도의 분량이 되어야 했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오지랖이 들어오지 않도록 나의 상태를 가리는 내용으로 써야 했다. 더이상 누군가 나를 검사하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좀더 솔직한 일기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단지 지금껏 하지 않았을 뿐이다.

블로그는 예전에도 몇번 한 적이 있고, 중고등학생때 가장 활발히 했다. 어렸을 때의 그림일기와 비슷하지만 분량은 훨씬 더 적은 이미지와 몇마디의 글자들을 올렸다. 이제 다시 블로그를 한다면 그냥 보통의 글을 쓰자고 마음 먹었다. 블로그에 방문한 봇이나 사람에게 어떤 격을 차려야 한다고 의식한 것은 아니다. 그런 걸 하고 싶으면 그냥 블로그 대신 다른 걸, 이를테면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텀블러같은 것을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1. 파스칼 키냐르, 『은밀한 생』, 송의경 역, 문학과지성사, 2001, 74쪽.